데헷☆
어영부영하다가 많이 늦었네요.
6월 10일 집회에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본래는 남친님과 같이 가고 싶었지만 매우 바쁘셨기 때문에 대신 두사람의 몫을 하겠다며 홀로 집을 나섰습니다. 오랜만의 집회 참여였기 때문에 이것저것 챙기느라 어영부영하다가 오후 5시 쯤 종각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부터 걸어서 시청광장에 도착했는데, 꽉 막혀있을 줄 알았던 광장에 전경버스 한대도 없더군요. 알고보니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의 국회의원들이 밤새 광장을 지켜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민노당 의원 한분이 병원으로 실려갔다고 해요.
빈 광장에는 각종 노조분들이 의상을 맞춰입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다른 일반 시민은 아직 그다지 많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길을 건너 덕수궁 대한문 앞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곳은 거리 강연이 벌여지는 장소였지요. 연단에는 한 남자분이 마이크를 잡고 있었습니다. 길거리를 그저 지날뿐인 사람들에게 시야가 가로막혀져 어쩐지 지치고 힘겨워 보입니다. "지금 이곳을 찾는 분들 중 상당수 분들이 그저 호기심때문에 온 것이겠지요..." 체념적이고 절망적인 어떤 것이 느껴졌습니다. 고백하자면 민주화 항쟁의 정신을 잇기위해 왔다고 하지만 역사의 순간으르 직접 눈으로 목도하고 싶은 욕망이 더 컸습니다. 길거리에는 술판을 벌이시며 인파를 구경하러 온 노인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의 일부입니다. 무엇보다 힘 없는 우리 소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있는 그대로 보고 기억하고 남기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촛불이 일어난지 겨우 1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경찰과 시민 중 누가 먼저 폭력을 썼는지 조차 잊어버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학생들의 주도로 청계광장에 조촐히 모여 시작했던 평화롭던 촛불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거리행진을 하던 중 인원이 많아 도로 위에 내려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법으로 몰아 폭력을 행사한 그 때를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도 언제까지 기억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 기억을 잊지 않고 평생을 산다고 해도 우리 세대의 시대가 끝나면 쉽게 파묻혀버릴 것입니다. 당장 한 사람이 더 촛불을 든다고 해도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입 밖에 내어 알리고 되새겨 기억한다면 그 일의 의미와 가치는 죽지 않습니다. 저는 그 집단적인 기억에 한 일부가 되어 힘을 보탤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찾은 최선의 방법입니다.
대한문 앞에 서 있으려니 광장의 상황이 궁금해져서 다시금 시청광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잔디는 파릇파릇하게 여전히 보존이 잘 되어 있더군요. 그런데 심어놓은 꽃들은 많은 사람들의 발에 밟혀 이그러졌습니다. 문득, '이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 무리도 생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단체든 이런 대규모로 사람들이 모인다면 똑같은 결과가 일어날 것입니다.
예상대로 방송용 차량을 지나가지 못하도록 경찰이 방해하였기 때문에, 행사가 늦어져 7시 30분쯤 겨우 시작이 되었습니다. 4당의 대표연설, 그리고 방종철 열사의 아버님과 이한열 열사의 어머님께서 직접 나오셔서 연설하였습니다. 그런데 비가 온 후라 그런지 바람이 많이 불고 너무 추웠습니다. 하는 수 없이 비는 오지 않지만 혹시나 몰라서 사두었던 비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바람을 막아주어서 한결 나았습니다. 1부가 끝나고 배가 너무 고파서 근처 편의점을 갔더니 김밥류가 싹쓸이 되고 없더군요. 그래서 어찌어찌 근처 김밥집에서 10여분을 기다려 김밥 한 줄을 샀습니다. 주인 아저씨가 "손님을 그만 받던지 해야지 원." 이러시더군요. 돌아와보니 전광판에 권해효씨의 얼굴과 한 여고생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오늘 청소년 단체가 시국선언을 하였는데, 그 대표로 오른 학생이었습니다. 권해효씨의 말씀따라 "부끄러웠습니다."
퇴근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많이 불어나 10~15만명에 이르렀는데, 광장을 꽉 메우고도 덕수궁 대한문에서부터 프레스 센터 사이의 도로도 꽉 메워졌습니다. 평일치고 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모인 셈인데, 작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1년만이라 몸이 덜 풀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구호를 외치는 소리도 작고, 촛불을 든 숫자도 적었으며, 다소 소심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촛불 1주년이 지나는 사이 서로간 학습이 되었을 터. 경찰 쪽은 더욱 조직화되고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등 업그레이드 된 반면, 시민 쪽은 작년 호되게 당한 기억때문에 다소 행동이 움츠러든 분위기였습니다. 오기도 패기도 악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마치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듯 하는 토끼 떼 같았습니다.
9시가 넘어 대한문쪽 도로로 나섰는데 익숙한 불빛이 보였습니다. 경찰의 경고방송이 들립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그래서 좀 더 가까이 가보려고 움직이다가 최선선보다 약간 안쪽 왼편 부근에서 유리병 한개가 날아가서 전봇대에 부딪혀 깨졌습니다. 그리고 빈 페트 병이 날아갔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와아-. 하면서 사람들이 뒤로 달려나가길래 영문도 모르고 같이 뛰었습니다. 앞에 서 있던 아주머니께 물어보니 "앞에서 경찰들이 서서히 좁혀오고 있다" 고 합니다. 또 우루루 사람들이 뛰었으나 "천천히, 천천히" 구호를 외쳐주시는 분들이 있어 진정하기를 수차례.
걱정하는 남친님의 연락을 받고 더 이상 다가가기를 포기하고 도로에 있는 센스있는 분필낙서와 시를 구경하였습니다. 그리고 걱정하는 동생의 문자를 받고 10시 30분 쯤 철수하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동묘앞 쯤 와서 차를 갈아타려는데 남친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어디에요?"하시는겁니다. 으악 엄청 바빠서 정신없을 사람이!! 재빨리 돌아왔습니다. 11시쯤 시청역 2번출구에 도착해 남친님과 합류했는데, 저 배고플까봐 샌드위치를 사왔어요. 안그래도 무지 배고팠는데 진짜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그자리에서 뜯어서 한, 두입쯤 베어문 찰나였습니다. 우두두두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뒤로 필사적으로 달렸습니다. 찢어지는 듯한 여자의 비명소리, 그리고 새까만 전경떼가 한손에 방패를 들고 한손에는 회색의 봉 같은 것을 들고 위협하며 쫒아왔습니다. 그 기세가 정말 무서웠기때문에 전 한순간 '아, 오늘에야 말로 제대로 맞는건가' 했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서 제가 서 있던 지하철 입구로 우루루 밀려들어갔습니다. 하마터면 앞으로 굴러 도미노 사태가 벌어질 뻔 했는데 '천천히'구호를 외쳐주시는 아저씨 덕분에 무사히 아래로 내려와 피신했습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식겁했거든요. 어이 없어서 마른 웃음이 나왔습니다. 겨우 30초도 되지 않은 사이 벌어진 일입니다.
아까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대치선으로 나아간 여대생 단체와 한예종 학생들, 그리고 교복을 입고 있는 청소년들이 기억났습니다. 그네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대치선인 프레스 센터 부근과 시청역 2번출구 사이 거리가 꽤 되었기 때문에 안심했었는데, 그렇게 순식간에 전경들이 측면을 타고 돌진할 줄은 몰랐습니다. 한 손에 든 봉은 쇠파이프가 아니라 항공기 제조에 쓰이는 알루미늄 합금인 듀랄루민이라고 합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칼라TV 김승현 리포터가 이것으로 피격당한 동영상이 올라와있더군요. 10분만에 진압이 끝났다고 합니다. 그래도 6월 10일 민주화 항쟁의 뜻을 잇는 의미있는 날의 집회이고, 모인 숫자가 적지 않았는데 좀 허무하게 끝난 것 같습니다. 모 분이 말씀하신대로 우리는 폭력과 억압에 점점 무력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기분을 떨칠수가 없었습니다.





































덧글
아리샤인 2009/06/24 19:48 # 답글
얘가 집회 돌아다니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찾아가고 있었구나.여러가지로 힘들 거 아는 데, 덧글이 달려서 놀랬어.
애들 때문에 불편해서 덧글 못 다는 건 이해하니까 너무 무리하지마.
또 밥 안 챙겨먹고 폭주하거나 그러는 건 아니지? 몸 잘 챙겨.
아, 좀 전에 동생에게 연락이 왔는데 책이 안 왔다고 하더라.
네가 정신이 없어서 안 보냈겠다 싶긴 한데, 혹시 보냈니?
보내지 않았다면 6월 끝나기 전엔 보내줬으면 좋겠어.
헤니히 2009/07/04 01:41 #
후후... 밥도 안먹고 폭주한건 사실이랍니다; 아고;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노공 서거 후 진짜 사람들이 다들 팍 죽어가지고 신경이 쓰여 정신도 없었고요. 할 수 있는거라면 이런것 뿐이니 할 수 있을만큼 하려고요. 이것도 다 역사가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