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처음으로 간 락 밴드 공연 2008/04/09 00:22 by 헤니히

어느 세대가 되던 간에 언제나 주류와 비주류는 존재하는 법입니다. 저로 말하자면 비주류인 쪽으로 보통 소녀들이 할 법한 놀이나 취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혼자 즐길 수 있는 그림 그리기나 음악감상으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음악 감상이라고 해도 같은 나이 또래 동지가 거의 없는 클래식을 주로 듣는 것이었습니다. 워낙 과묵한데다가 취미가 그러하니 종종 애늙은이 같다는 오해를 받았으나, 그런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혼자를 즐기는 성격을 타고났던 것이었나봅니다. 아주 어린 꼬마였을 때 부터 타인의 손길을 거부하기 일쑤였거든요. 아이들을 좋아하는 언니떼들의 귀엽다며 쓰다듬는 손길이 아주 곤혹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종종 그런 손길을 짜증을 내며 손으로 쳐내곤 했다고 어머님이 말씀하셨지요.


그래서인지 자신과 타인이 섞이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아니 그렇기 때문에 그랬는지 사람 만나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다가가서 섞이면 불쾌하다면서 사람을 좋아하다니 이건 마치 제 키위 알러지 같은거 있죠. 키위를 좋아하는데 저는 키위 알러지가 있거든요. 그럼에도 종종 무시하고 키위가 들어간 케이크나 아이스크림을 즐기기도 하는겁니다. 나중에 목이 퉁퉁 부어도 말이죠.


I님이 제안하신 락밴드의 쇼케이스 번개를 주저주저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이 있었습니다. 같은 날 클래식 동호회의 직접 연주하며 이야기하는 에튀드 설명회를 가고 싶기는 했지만 그런 기회는 나중에도 얼마든지 있을테고요. 누가 날 끌고 가지 않으면 언제 이런 공연을 가보겠어요? 저는 그런 공연은 물론, 클럽이나 나이트도 한번 안가봤거든요. 술보다는 차요, 춤보다는 대화인 고리타분한 생활이었으니 말이어요.


목적지인 롤링 홀을 물어물어 찾아가서 공연시작 전 까지 전 꽤나 의욕적이었고 기대에 들떠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키위 알러지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지하로 내려가서 제일 처음 보인 것은 희뿌연 연기였는데, 촌스럽게도 담배연기로 착각을 하고 손을 내저었습니다. 그러나 담배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느끼고는 오해했다는 것을 알아 챘습니다. 공연장은 그다지 큰 규모는 아니었습니다. 커다란 스크린이 무대를 가리고 있었고 앞부분에 사람들이 몰려있더군요. 또 뒷부분에 서있는 무리들도 있었고요. 우리는 한 가운데 중간쯤에 섰습니다.


공연이 시작되자 가운데의 큰 스크린은 위로 올라가 사라지고 무대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양 옆 천정에 붙어있는 작은 스크린에서는 곡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영상을 내보이고 있었습니다. 라이브 답게 입체적인 음향과 환상적인 조명, 소리와 공명하듯 흔들리는 공기의 진동, 소리의 바다에 휩쓸리는 사람들의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공연이 슬슬 본 궤도에 올라가니, 리듬을 타는 사람들, 뛰어오르며 손을 드는 사람들, 춤을 추는 사람들이 모두 혼연일체가 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공연이 막 시작하기 전의 우리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스크린에 유동하며 떠오르는 밴드의 이름의 배경에는 아름다운 석양의 영상이 있었거든요. 거기에서 동행하신 H님이 모처에 올리신 글이 떠올랐습니다. 인도의 우파니샤드에 있다는 어떤 구절, '해지는 광경의 아름다움에 문득 걸음을 멈추는 사람은 벌써 신의 일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 이야기를 꺼내자 I님께서 말씀하시길,

"헤니히양, 예전에 '신성한 힘'을 느껴보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 있지요? 석양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바로 '신성한 힘'을 느끼는 것이 아니겠소? 그런 점에 있어서 '신의 일에 참여하고 있다'고 표현한것이 아닌지."

저는 그 말씀에

"저 같은 사람은 석양을 보아도 그저 디카를 사야겠다는 생각밖에 하질 못한답니다." 라며 우스갯소리로 넘어갔습니만 어쩌면 제가 이야기했던 그 '신성한 힘'은 I님의 말씀과 조금 의미가 달랐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히려 공연이 열기를 띄고 있는 이 순간 '신성한 힘'의 실재를 목격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폐쇄되고 어두운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높은 곳에서 빛나고 있는 것은 이 밴드이고 그들은 마치 신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이곳에서는 그들이 룰이며 절대적인 진리였습니다. 그 아래에서 사람들은 절대적인 리듬에 맞춰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를 구분하거나 분리해내지 않고 녹아서 하나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이것은 또한 내 어릴 적 기억의 한조각을 떠올리게끔 했는데, 그것은 국민학교 시절 교회에서 열렸던 여름학교 때 일이었습니다.


1박 2일 교회 앞마당에서 조를 짜서 텐트를 치고 이런 저런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밤중에는 촛불을 켜고 둘러 앉게 합니다. 교회선생님이 마이크를 잡고는 아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할만한 이야기를 꺼내고 통성기도를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때의 분위기... 모두가 울며 기도하고 심지어 기절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분위기에 휩쓸려보고 싶었으나 그것이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교회를 다니는 동안 이런 식의 수련회나 부흥회를 몇번이나 갔었지만 이런 상태는 영영 느낄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


어떤 신화적인 원형을 자극하도록 조성해놓은 환경에서 사람들은 쉽게 자신 속에 있는 집단 무의식 속의 원형을 자극당하고 그에 무의식적으로 반응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그들은 바로 제가 그렇게 원하던 '신성한 힘'을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카타르시스, 치유되는 느낌이나 정화되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겠지요.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문득 천장에 달린 스크린을 보니 어떤 붉고 파란색의 추상적인 도형이 원을 그리며 안쪽으로 모이거나 확산되며 점멸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분자들의 조합같기도 했고, 추상화 같기도 했으며, 또 티벳의 만다라를 짜 넣은 카페트 같기도 했습니다.


마음의 구조는 양자역학과 닮았다고 융 아자씨가 그랬었죠. 또 그것은 점점 무의식의 심층으로 치닫는 현대미술의 추상화와도 닮았다고 했습니다. 더욱 더 심층으로 내려가면 내려갈 수록 좀 더 단순한 패턴의 반복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분자에서 원자로, 원자핵에서 소입자나 쿼크로. 이런식으로 더욱 심층으로 내려가면 어떤 패턴도 찾을 수 없는 그저 방향성 없이 요동치는 그저 균질적이고 아무 의미 없는 무언가와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보니 문득 귀에 들어오고 있는 이 밴드의 음악 장르가 단순한 패턴의 전자음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일렉트로니카가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그런식으로 무의식으로, 심층으로 들어가 자신의 개체를 잊고 녹아들어가 하나의 존재가 되려고 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까지 드니 제 존재는 전혀 조금도 타인과 함께 녹아들수가 없으며 오히려 분리되어 고립되었다는 사실만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되더군요. 또한 그것이 위협으로 다가오자 공기가 답답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그들'이 될 수 없으니 더 이상 거기 존재하고 있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끝나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또 바랬습니다. 열심히 노래하고 연주하는 밴드와 보컬분께 너무 미안했습니다. 또 애써서 끌고 와주신 I님께도 얼마나 죄송했던지!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노력했어요. 그래도 안되는 것을 어쩌겠습니까? ㅠㅠ


애초에 저는 너무 자의식이 강했나봅니다.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똑똑히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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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시니키 2008/04/09 11:46 # 답글

    저도 통성기도나 수련회나 부흥회에는 전혀 분위기에 휩쓸리지 못하겠더군요. 오히려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래서 기도는 그냥 혼자 방 안에서 하지요.)
    어쩌면 단순히 시끄러운 것이 싫으셨는지도 모릅니다. ^^;;; 전 그래도 콘서트장에 가서 함께 소리지르고 나면 속이 시원해서 좋긴 하더군요. 요즘은 딱히 좋아하는 가수가 없어서 가지 않습니다만...
  • 헤니히 2008/04/10 15:27 # 답글

    시니키님/ 맞습니다. 어쩌면 단순히 시끄러운 것이 싫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조금 다른식으로 접근을 해야했던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시는 안 가!'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만, 다시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시니키 2008/04/10 15:56 # 답글

    아니... 무리하셔서 시도하실 것까지야 없습니다.;;; 그냥 단순한 제 생각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ㅇ_ㅇ;;;
  • 헤니히 2008/04/11 01:18 # 답글

    시니키님/ 와하하하... 걱정 마셔요! 기회가 생기면 시도한다는 것이고요. 당분간은 기회가 안생길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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